평생 직업은 없는 시대라지만, 오래도록 해온 일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분명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그 업계에서 쌓은 경력과 명성, 인맥과 수입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죠. 누구든 고민될 법한 일이지만, 보다 만족스러운 인생 2 막을 위해 이런 도전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용해 씨도 그들 중 한 사람인데요. 지상파 방송국의 잘나가는 PD였던 그가 선택한 새 직업은 과연 무엇일까요?


문학평론가를 꿈꾸던 영문학도, PD가 되다


이용해 씨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86학번입니다. 문학평론가가 되고 싶어 선택한 학과였죠.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니 천재적인 친구들이 너무 많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재능은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우연히 영화에 흥미가 생겨 자연스레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직업이었던 PD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데요. ‘PD는 영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졸업 후 1993년부터 SBS에서 PD로 일하게 된 그는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프로그램 제작에 두루 참여했습니다.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SBS 인기가요’, ‘LA 아리랑’ 등이 그가 연출한 프로그램이었죠.

입사 10년 후에는 ‘초록뱀 미디어’ 제작본부장으로 부임해 드라마 제작에 힘을 쏟았는데요. ‘올인’, ‘주몽’, ‘불새’ 등 쟁쟁한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들이었습니다. 2010년부터는 ‘메이콘텐츠’의 대표이사로서 E채널 ‘용감한 기자들’, tvN ‘두 번째 프러포즈’ 등을 제작했죠.

시력 상실의 위기까지 겪은 로스쿨 시절


PD로서나 제작자로서나 흠잡기 어려운 경력이었지만, 이용해 씨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년 넘게 하니 재미가 없었다’는 심플한 이유에서였죠. 대학에서 방송 제작 관련 강의를 하기 위해 석사학위를 취득할까 고민하던 중 안면이 있던 변호사 한 사람이 로스쿨을 추천했는데요. 석사학위와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죠.

틈틈이 준비한 끝에 2015년 전남대 로스쿨에 들어간 그는 그야말로 ‘곡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합니다. PD 생활을 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온 그였기에 23세 동기와 가장 친하게 지낼 정도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지만, 나이 들어 하는 강도 높은 공부가 쉬울 리는 물론 없었습니다. ’35세 이상 참 곡소리 난다’, ’35세 이상 꼭 합격하자’라는 뜻의 ‘삼오곡’이라는 모임도 만들었죠.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무리한 탓인지, 변호사 시험이 몇 달 남지 않은 어느 날 기숙사로 돌아오는 이용해 변호사의 눈앞이 흐려집니다. 시력 상실의 위험까지 있는 ‘망막박리’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죠. 곧바로 응급수술을 받고 간신히 회복해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는데요. 회복 기간 동안 ‘삼오곡’ 멤버들이 매일 전화로 최신 판례를 읽어주는 등 도움을 주었죠.


25년 미디어 경력 살린 변호사 생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이용해 씨는 2018년 제7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합니다. 그리고 법무법인 ‘화우’에 입사했죠. 미디어 분야에서 오랜 경험이 있는 만큼 제작 경험을 살려 지식재산권 보호에 힘쓰고 싶다는 것이 이용해 변호사의 포부인데요. 현재 그는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관련해 전반적인 비즈니스 컨설팅 및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SM을 비롯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회사들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죠.

PD로 일하던 시절과 변호사가 된 지금, 이용해 변호사의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PD 시절에는 수염을 기른 채로 청바지를 입고 일했지만 지금은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고 다니죠. 옷차림과 함께 일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는데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주도적으로 일하던 PD 시절과 달리, 지금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더 큰 무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PD와 변호사는 예나 지금이나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직업이죠. 이 두 가지 직업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라면 조금 자랑하고 싶을 법도 한데, 이용해 변호사는 “나 때와 지금은 환경이 너무 다르다”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을 아낍니다. 로스쿨 재학 시절 젊은 사람들의 고충을 느끼게 되었다는 그는 동년배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조언하죠. 다만 매우 궁하면 도리어 펴나갈 방법이 생긴다며 “너무 자신을 가두지 말라”고 덧붙였는데요. 충분히 안정된 삶을 보장받았음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한 이용해 변호사의 성정을 잘 드러내주는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