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 경색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유니클로는 새 영상광고의 한국어 자막에만 위안부를 조롱하는 듯한 내용을 넣었다는 의혹으로 한국 소비자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죠. 일본이 한국 경제의 심장인 반도체 산업을 소재 수출 제한으로 압박하는 이 상황에서, 빠르게 국산화에 성공하며 국내 경제에 미치는 일본의 영향을 최소화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의 마음까지 흐뭇하게 만든 이 기업들은 어디인지, 얼마나 훌륭한 성과를 이뤄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갓 LG가 해냈다, 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


국내 모든 기업의 부서들 중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원성을 듣는 것은 아마 LG의 마케팅팀, 홍보팀일 겁니다. 제품을 잘 만들어 놓고도, 선행을 하고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매번 삼성에 밀린다는 것이 이 원성의 주된 사유인데요. 소방관들의 방화복을 깨끗이 세탁할 수 있는 방화복 전용 세탁기를 개발해 무상으로 기증하고, 복지시설 전자제품의 애프터서비스를 무제한 무료로 제공하는 등 조용히 한 ‘착한 일’들이 소비자들의 입을 통해 온라인에서 종종 화제가 되곤 하죠. 이런 이유로 LG를 ‘갓G’ 혹은 ‘갓LG’로 부르며 나서서 홍보하는 이들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최근 LG는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할 만한 일을 하나 더 해냅니다. LG 디스플레이가 7월 일본이 일방적 수출규제에 돌입한 지 3개월 만에 고순도 불화수소의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세정에 반드시 필요한 고순도 불화수소는 지금까지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는데요. 올여름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품목에 포함되며 국내 기업들을 당황케했죠. 엘지 디스플레이는 고민하며 쩔쩔맬 시간에 바로 국산화에 돌입합니다. 당초 9월 말쯤에야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던 국산품 대체가 예측보다 일찍 마무리되면서, 엘지는 더 이상 일본 정부와 기업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죠.


한국인 입맛엔 한국 카레, 오뚜기


기업으로서 ‘갓’의 칭호를 가장 먼저 얻은 것은 아마 오뚜기일 겁니다. 창업주 고 함태호 명예회장 시절부터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하고 오뚜기 재단을 통해 40억 원 상당의 장학금을 출연하는 등 선행을 이어온 것이 알려지면서 ‘갓뚜기’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함영준 현 회장 역시 합법적 승계와 라면 값 동결 등의 행보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60년대에 카레의 국산화에 성공하며 대중화를 이끈 장본인 역시 오뚜기인데요.

오뚜기에서는 라면, 양념, 즉석밥 등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오뚜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은 아무래도 카레겠죠.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은 오뚜기 카레는 고 함태호 회장의 결단으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당시 국내에서 구입이 가능한 카레는 모두 일본 카레뿐이었고, 국민들에게 일본 카레를 먹이기 싫었던 함 전 회장은 국산화에 돌입했죠. 카레의 주성분이 되는 재료들을 수입해 직접 배합 비율을 연구한 결과 1969년 최초의 국산 카레인 ‘오뚜기 카레’가 탄생합니다. 이후로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도 카레가 대중화되었고, 81년 ‘3분 카레’ 등장 후에는 바쁜 현대인들도 간편하게 카레를 즐길 수 있게 되었죠.


한 단계 미리 내다본 인수, SK 실트론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전자제품 시장의 최고 강자는 일본 기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니즈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고 ‘늘 하던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소니, 파나소닉 등의 전자제품 브랜드들은 일부 제품군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예전의 명성은 잃어버리고 말았죠. 반면 일본으로부터 기술 독립을 이뤄내고 나아가 시장 트렌드를 빠르게 예측·적용한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는데요.

한국 기업들의 이런 적극적인 행보는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SK 실트론은 미국의 반도체 기업 ‘듀폰’을 인수하면서 일본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던 웨이퍼 시장에 도전장을 내놨습니다. SK 실트론은 이미 뛰어난 결정도와 평탄도, 청정도를 갖춘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9%대에 머물렀는데요.

듀폰사의 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 부문을 5400억 원에 인수하면서 향후 판도를 뒤엎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는 일반 실리콘 웨이퍼에 비해 열전도율이 3배나 높아 냉각에 유리할 뿐 아니라 빛을 통한 소자에 사용하기에 더욱 적합합니다. 전기차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에 대한 수요도 급증할 전망이죠. 일본이 이미 독점한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더 진보한 영역으로 뛰어든 겁니다.

폴리이미드 대체할 유리 개발 성공한 중소기업


대기업만 일본을 앞지르라는 법은 없죠. 최근 국내 중소기업 유티아이가 폴더블폰 용 커버 윈도 개발에 성공하면서 화제를 모았는데요. 일본의 수출 제한 품목 중 하나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대체할 수 있는 이 얇은 유리는 특수 가공기술이 더해져 완벽한 폴딩 특성을 구현하죠. 뿐만 아니라 150그램짜리 쇠구슬을 1미터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강성을 갖췄습니다.

유티아이는 이 폴더블폰 용 커버 윈도를 한 달에 10만 개 이상 양산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이미 마련한 상태라고 하니, 국내에서 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일본의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점차 대체해 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니클로 대항마 탑텐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일본 브랜드로는 도요타와 아사히, 그리고 유니클로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유니클로의 경우 저렴한 가격과 실용적인 제품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한일 관계 악화 이후 본사 CFO의 ‘불매 운동 오래 못 간다’는 막말까지 더해지면서 매출이 급감했죠.

유니클로를 알린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히트텍’일 겁니다. 영하 10도 이하의 매서운 추위가 매년 강타하는 한반도에서 겉으로 드러나도 흉하지 않은 심플한 디자인의 발열 내의는 불티나게 팔릴 수밖에 없었죠. 이를 본 신성통상의 염태순 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일본 내복을 좋아하냐”며 히트텍을 견제할만한 이너웨어를 개발하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 태어난 것이 ‘탑텐’의 ‘온에어’입니다. 오랫동안 유니클로 모델이었던 배우 이나영 씨를 자사의 새 모델로 기용하면서 ‘탑텐’이 화제에 오르는 일도 있었죠. 슬슬 날씨가 쌀쌀해지는 지금, 탑텐의 온에어가 히트텍을 제치고 발열 내의 시장을 차지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소재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 혹은 일본 브랜드 제품을 대체할 만한 신제품을 개발한 기업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변화와 역전은 그냥 일어나지 않죠. 위기를 기회 삼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더욱 선전하기를 기대해 봅니다.